이직 후 1년 회고

새로운 회사로 이직 후 1년이 지난 기념으로 회고를 해봤습니다.
최대한 진솔하고 가감없이 작성하기 위해 반말체(이다체)를 사용했습니다.

< 1년 동안 지금 회사를 다니며 느낀 점 >

큰 조직은 시스템을 통해 일이 되게 한다

전 직장에 비해 현 직장은 인력 규모로는 5배, 매출로는 10배 규모의 회사이다. 규모가 배로 커지다 보니 회사의 일하는 방식과 시스템 등 다른 점이 정말 많다.
가장 크게 느낀 차이점은 몇몇 아웃라이어 개발자들에 의해 돌아가는 게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일이 돌아가는 곳이라는 것이다.
작은 조직에서는 개개인의 역량이 프로젝트의 성패를 결정짓는 경우도 많지만, 큰 규모의 조직에서는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잘 갖춰진 시스템을 통해 일을 되게 한다. 그 시스템 안에 소속된 개인은 각자에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
이렇게 일을 하는 근본적인 방식에서부터 차이가 나다 보니 입사 초반에는 적응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일을 진행할 때 전에 일하던 방식으로 개인이 빠르게 치고 나가듯이(업무를 쳐낸다고 표현하듯이) 업무를 진행했는데 혼자서만 전력질주로 달려가서 저 멀리 결승점에서 남들을 기다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 혼자 이방인처럼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의사 결정 과정이 길고, 보안성 검토도 많고, 아키텍처 하나 바꾸고 검증하는데 오래 걸리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 직장은 개인의 업무 역량보단 전체 조직이 잘 협의된 상황에서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이 중요했기에 ‘어떻게 실행하는가’ 자체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서로 다른 팀 간에 협의를 해서 실행하는가’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다른 팀 간 아키텍처를 협의하고 역할을 구분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상대적으로 작은 회사와 팀에서 일했기에 ‘서로 다른 팀 간’의 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내 식대로 앞서나가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 회사에 일하는 방식에 적응하면서 개발을 잘하고, 기술적으로 뛰어난 개인이더라도 시스템 안에서 정해진 방식과 역할에만 충실하게 일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의 역량이 돋보이기 쉽지 않은 구조라는 점도 잘 느껴졌다.
동시에 기술적으로 엄청 뛰어나진 않더라도 이 시스템 안에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충분히 1인분의 직장인 몫을 해낼 수 있는 구조이구나 라는 생각도 같이 하게 되었다.

회사 동료들의 인격적, 기술적 하한선이 높다

이전 직장은 중소기업이고 회사 자체의 네임벨류가 없어 우리가 원하는 좋은 동료를 채용하는 것이 힘들었다.
팀에서 원하는 기술적 역량을 가진 사람이 지원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고 원하는 지원자가 나타나 최종 합격이 되더라도 입사까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회사는 특정 도메인에 네임밸류가 있는 곳이다 보니 오래 근속하신 분도 있고 그에 맞는 기술력을 갖춘 엔지니어분들이 있다.
전 직장에서는 일을 할 때 나를 사람이 아닌 어떤 일을 해주는 부품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같은 회사 사람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기반 지식이 부족하거나 기술력이 부족하다 싶은 동료들도 종종 봤다.
이곳에서는 기업이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해주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서로를 존중한다는 전제 하에 사람을 대한다는 것이 일을 하면서도 느껴져서 일을 할 때 편한 순간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히고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 사람은 존재한다

그 어떠한 직장도 천국은 아닐 것이다. 만약 천국 같다고 하더라도 아예 불만이 없는 회사나 포지션은 없다고 생각한다.
앞서 얘기한 안정적인 시스템, 좋은 동료들이 장점이라면 내가 느끼는 큰 단점 중 하나는 느린 의사결정 프로세스이다.
예전에 빠르게 일하던 습관이 아직 남아있어서 그런지 예전 직장과 비교한다면 현재 직장의 시간은 두 배 정도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을 좋아하는 엔지니어도 있지만 나는 다양한 경험과 성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느리게 흘러가는 프로세스 사이에서 지루함과 권태를 느낄 때가 많다.
빠르게 흘러가는 비즈니스 속에서 임팩트를 내고 보람을 느끼고 싶은데 상대적으로 이곳은 보람과 성취를 느끼기 쉽지 않은 구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느린 프로세스에 적응한 근태가 안좋은 나쁜 장기근속자들도 종종 보인다.
내 미래가 저 모습은 아니고 싶기도 하고, 빠르고 유연한 환경에서 재밌는 업무들을 맡아보고 싶기도 하다.

< 1년 동안 회사 밖에서 한 일들 >

더 이상 회사 안의 개발자로만 남고 싶지 않아

전 직장 안에서 퇴사를 해야겠다는 계기가 되었던 감정은 앞으로 어떠한 노력을 하더라도 이 조직과 문화를 바꿀 수 없다는 무망감이었다. 그리고 전 직장에서 퇴사를 하고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은 허무함이었다.
개발자로서 자기가 만드는 서비스에 오너십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퇴사 후에는 결국 회사 안에서 만든 회사의 서비스이고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이 허무함은 일을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일만 열심히 해서라는 생각을 이 직장에 오고 나서 점점 더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직 후 나의 목표는 회사 밖의 나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보자였다. 이직 후에 그래서 여러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는데, 1년 동안 내가 했던 도전들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새로운 도전들

  • 전화 영어
  • popeye 오픈소스 기여
  • DevOps 스터디 모임 참여
  • 밑미 모임 (명상 수업)
  • AWSKRUG 소모임(Platform Engineering, Woman In Cloud) 참여
  • Cloud Club 커뮤니티 모임 신청
    • 탈락 -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탈락했다.
  • Girls In Tech 운영진 신청
    • 탈락 - 커뮤니티를 직접 운영해본 경험이 없어서인지 탈락했다.
  • 한기용 커리어 컨설팅 모임 참여
  • 이사
  • 운동 (요가)